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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압약을 처방받으면서 아스피린이 함께 나왔을 때, 저는 처음엔 "이게 왜 들어있지?" 싶었습니다. 알고 보니 아스피린은 혈압을 낮추는 약이 아니라 혈전 형성을 막는 항혈소판제였습니다. 그런데 최근 연구들을 살펴보니, 심혈관 질환을 겪지 않은 사람이 예방 목적으로 아스피린을 먹는 것이 과연 효과가 있는지에 대한 답이 예상과 꽤 달랐습니다.
아스피린 1차예방, 믿어도 될까
심혈관 질환에 한 번도 걸린 적 없는 사람이 예방 목적으로 아스피린을 먹는 것을 1차 예방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해 아직 병이 오지 않은 상태에서 미리 막겠다는 접근입니다. 오랫동안 이것이 당연한 예방법처럼 여겨져 왔는데, 저도 처음 처방전을 받았을 때 그냥 당연히 먹어야 하는 약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용량 아스피린, 보통 100mg 용량은 COX-1 효소를 억제해 항혈소판 효과를 냅니다. 여기서 COX-1이란 혈소판이 뭉치는 데 관여하는 효소로, 이것이 억제되면 혈전이 잘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혈관이 막히는 것을 예방할 수 있을 것처럼 들리는데, 일반적으로 아스피린이 심혈관 질환을 예방한다고 널리 알려져 있는 이유도 바로 이 원리 때문입니다.
2018년 국제 의학 학술지 NEJM에 발표된 연구에서 미국과 호주의 70세 이상 성인 19,114명을 약 5년간 추적 관찰했는데, 절반은 매일 100mg 아스피린을 복용하고 나머지 절반은 위약(가짜 약)을 복용하게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심혈관 질환 발생률은 두 그룹 사이에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차이가 없었습니다.반면 중대 출혈 부작용은 아스피린 복용군에서 유의미하게 더 많이 발생했습니다.
이 결과가 저에게는 꽤 충격적이었습니다. 효과는 없고 부작용만 더 생겼다는 뜻이니까요. 한국 임상 가이드라인 역시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40~59세의 심혈관 질환 고위험군이면서 출혈 위험이 낮은 경우에 한해, 득실을 꼼꼼히 따진 뒤 개별적으로 고려하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일반인에게 폭넓게 권장되는 치료가 아니라는 점이 핵심입니다.
- 1차 예방 목적의 저용량 아스피린: 심혈관 질환 발생 억제 효과가 미미하고, 중대 출혈 위험이 이득을 상쇄
- 40~59세 심혈관 고위험군 + 출혈 위험 낮음: 개별적으로 득실을 따져 의사와 상의 후 결정
- 70세 이상 고령자: NEJM 연구 결과상 이득 없음, 오히려 출혈 부작용만 증가
- 일반 성인 1차 예방 목적: 현재 가이드라인상 권고되지 않음
위장출혈 위험과 내가 선택한 복용 기준
아스피린이 위장출혈을 일으키는 데는 세 가지 기전이 겹칩니다. 첫째, 아스피린이 위점막에 직접 자극을 줍니다. 둘째, 위점막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프로스타글란딘의 합성을 방해합니다. 여기서 프로스타글란딘이란 위 점막을 보호하는 막을 유지하고 점액 분비를 촉진하는 물질로, 이것이 줄어들면 위벽이 쉽게 손상됩니다. 셋째, 항혈소판 작용 때문에 일단 출혈이 생기면 피가 잘 멈추지 않습니다. 이 세 가지가 동시에 작용하니 위장 손상 가능성은 생각보다 높습니다.
아스피린이 혈전을 막는 약이니 위에 그렇게까지 나쁠 거라고는 크게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위점막 보호에 꼭 필요한 물질을 직접 억제한다는 걸 알고 나서는 위가 조금이라도 불편한 날에는 괜히 신경이 쓰였습니다.
부작용 위험을 줄이기 위해 PPI(proton pump inhibitor), 즉 위산 분비 억제제를 함께 복용하는 방법이 권고됩니다. 특히 아래 조건 중 하나라도 해당하면 PPI 병용이 강력히 권장됩니다. 65세 이상, 위·십이지장 궤양 병력, 소염진통제(NSAIDs) 병용, 스테로이드나 항응고제 복용 중,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감염이 있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다만 PPI도 장기 복용 시 저산증, 장내 세균 불균형, 골다공증 같은 부작용이 생길 수 있어 무조건 추가한다고 좋은 것은 아닙니다.
2차 예방의 경우는 다릅니다. 심근경색, 협심증, 뇌경색, 스텐트 시술, 관상동맥 심장 수술, 일과성 허혈 발작, 말초 혈관 폐쇄를 경험한 분들은 재발 위험이 워낙 크기 때문에 아스피린이 분명히 필요합니다. 2차 예방에서는 이중 항혈소판 요법, 즉 아스피린에 기전이 다른 항혈소판제를 추가해 함께 쓰다가 일정 기간 후 아스피린 단독으로 전환하는 방식이 현재 표준에 가깝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2차 예방 대상인 분들은 약을 임의로 줄이거나 끊으면 오히려 훨씬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제가 지금 신경 쓰는 것은 출혈 신호를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혈변, 흑변, 이유 없이 피부에 멍이 자주 드는 증상이 생기면 즉시 복용을 중단하고 위내시경을 포함한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아스피린을 매일이 아니라 며칠 간격으로 먹는 것은 효과도 없고 근거도 없는 방법입니다. 드신다면 매일 꾸준히, 그리고 정기적으로 의사와 점검하는 것이 맞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혈압약 처방에 아스피린이 같이 나왔는데 꼭 먹어야 하나요?
A. 아스피린은 혈압을 낮추는 약이 아니라 혈전 형성을 막는 항혈소판제입니다. 처방된 이유가 1차 예방인지 2차 예방인지에 따라 판단이 달라집니다. 제 경우처럼 단순히 고혈압 관리 차원이라면, 현재 가이드라인상 1차 예방 목적의 아스피린은 일반적으로 권고되지 않으므로 처방 이유를 의사에게 직접 확인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Q. 아스피린을 오래 먹으면 위가 나빠지나요?
A. 일반적으로 아스피린이 위에 나쁘다고만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는 위점막 직접 자극, 보호 물질인 프로스타글란딘 억제, 항혈소판 작용으로 인한 지혈 저해까지 세 가지 기전이 겹칩니다. 65세 이상이거나 궤양 병력이 있는 경우에는 위산 분비 억제제인 PPI를 병용하는 것이 권고되므로, 속이 쓰리거나 불편한 증상이 있다면 반드시 의사와 상의하는 것이 맞습니다.
Q. 심근경색이나 뇌경색 후에도 아스피린을 끊으면 안 되나요?
A. 심근경색, 뇌경색, 스텐트 시술 등을 경험한 경우는 2차 예방 대상으로, 아스피린이 재발 위험을 낮추는 효과가 분명합니다. 이 경우 임의로 끊으면 오히려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위장출혈 등 부작용이 생기면 다른 항혈소판제로 전환하는 방법이 있으므로, 반드시 담당 의사와 상의 후 결정해야 합니다.
Q. 슈퍼 아스피린이 일반 아스피린보다 낫다고 하던데 사실인가요?
A. 슈퍼 아스피린이라 불리는 신형 항혈소판제들이 개발되어 있지만, 1차 예방 목적으로는 이 약들 역시 근거가 충분하지 않습니다. 부작용이 적은 항혈소판제들이 계속 나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1차 예방 자체에 대한 적응증이 제한적이라는 점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어떤 약이든 복용 전 의사와 충분히 상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처음 아스피린이 처방됐을 때 저는 그냥 좋은 약이겠거니 하고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직접 공부해 보니, 1차 예방 목적으로는 효과보다 위장출혈 같은 부작용 위험이 더 클 수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습니다. 반면 심근경색, 뇌경색, 스텐트 시술 이후 재발을 막는 2차 예방에서는 아스피린의 역할이 여전히 명확합니다.
제 경험상 이건 단순히 "먹을지 말지"의 문제가 아닙니다. 왜 처방받았는지를 정확히 아는 것, 그리고 위장 불편 증상이나 출혈 신호를 스스로 챙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스피린을 먹고 있다면 정기 검진 때 처방 이유와 지속 여부를 의사에게 한 번쯤 확인해 보는 것을 권합니다.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 같은 대사 질환을 잘 관리하고 금연과 적절한 체중을 유지하는 것이 심혈관 건강의 기본이라는 점도 잊지 마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