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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한 부침가루 1g에서 진드기가 4,500마리 나왔다는 연구 결과를 처음 접했을 때, 잠깐 멍해졌습니다. 욕실 타일 줄눈이 까맣게 변한 걸 발견하고도 "나중에 닦아야지" 하며 몇 주를 넘긴 제가 떠올랐거든요. 우리 집 욕실과 주방에는 생각보다 훨씬 다양한 생물이 살고 있고, 그 위험도는 제가 짐작하던 것보다 훨씬 심각했습니다. 관련 영상을 보고 정리해봤습니다.

 


위험도 판정 : 욕실·주방 생물 8가지

욕실과 주방에서 자주 마주치는 생물 여덟 가지를 하나씩 살펴봤을 때, 제가 가장 놀란 건 '보여서 무섭다'고 느낀 것들이 오히려 상대적으로 덜 위험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욕실 벽에 딱 붙어 있는 나방파리는 하수구가 고향인 탓에 병을 옮길 것 같지만, 실제로는 모기처럼 피를 빨거나 감염병을 옮긴 사례가 국내에서 보고된 바 없습니다. 성충을 잡는 것보다 배수구 안쪽의 끈적한 바이오필름(biofilm)을 제거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여기서 바이오필름이란 세균이나 유기물이 배관 내벽에 달라붙어 형성하는 끈적한 막으로, 나방파리 유충의 주요 서식처이자 먹이원입니다.

불을 켜면 스르륵 도망가는 좀벌레나 쌀통 속 쌀바구미는 징그럽지만 위험도 1점으로 낮게 평가됩니다. 좀벌레는 사람을 물거나 병을 옮기지 않고, 쌀바구미도 쌀을 먹을 뿐 독성은 없습니다.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 자료에 따르면 쌀바구미는 물거나 쏘지 못하고 질병을 전파하지도 않습니다.

반면 눈에 잘 안 띄는 것들이 실제로 더 주의가 필요했습니다. 샤워부스 구석의 분홍빛 끈적이, 이른바 붉은 물때는 곰팡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세라티아 마르세센스(Serratia marcescens)라는 세균 덩어리입니다. 세라티아 마르세센스란 습하고 환기가 부족한 환경에서 비누 찌꺼기와 피부 기름을 먹고 빠르게 번식하는 세균으로, 건강한 성인에게는 큰 위협이 아니지만 면역이 약한 사람에게는 위험합니다. 서울대병원 연구에서는 드림렌즈 착용 중 각막염이 생긴 아이 26명 중 4명이 이 균이 원인이었다고 기록했습니다.

찬장 틈에서 나오는 수시렁이는 직접 물지 않아도 피부에 피해를 줍니다. 2020년 프랑스 니스에서 일곱 가족 11명이 벌레에 물린 것처럼 피부에 붉은 돌기가 생겼는데, 원인은 수시렁이 애벌레의 창끝 모양 털이 피부에 박혀 유발한 알레르기 반응이었습니다. 에어컨 바람을 타고 집 안 전체로 퍼질 수 있어 에어컨 청소를 함께 챙겨야 한다는 점도 제게는 예상 밖이었습니다.

싱크대를 줄지어 다니는 애집개미는 작아서 가볍게 봤는데, 브라질의 한 응급병원에서 채집한 개미 9,687마리 중 애집개미가 39.2%로 가장 많았고 세균 오염 비율도 가장 높았다는 조사 결과가 있습니다(출처: 질병관리청). 미국 FDA 연구진도 애집개미를 식중독균을 퍼뜨릴 수 있는 해충 목록에 올려두고 있습니다.

  • 나방파리·좀벌레·쌀바구미 — 위험도 1점 (무해, 단 위생 관리 필요)
  • 수시렁이·애집개미 — 위험도 2점 (유해, 피부 알레르기·식품 오염 가능)
  • 붉은 물때(세라티아균) — 위험도 3점 (유해, 면역 약자 주의)
  • 욕실 검은 곰팡이 — 위험도 4점 (유해, 호흡기·아토피 위험)
  • 가루진드기 — 위험도 5점 (유해, 아나필락시스 위험)
 

 

가루진드기와 검은 곰팡이, 직접 맞닥뜨린 뒤 바뀐 것들

욕실 타일 줄눈이 검게 변한 걸 처음 발견한 날을 또렷이 기억합니다. "보기 싫네" 하고 넘겼는데, 알고 보니 그게 아스페르길루스(Aspergillus)나 클라도스포리움(Cladosporium) 같은 곰팡이 포자를 공기 중으로 날리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아스페르길루스란 습기가 많은 환경에서 빠르게 증식하며 호흡기로 포자가 들어올 경우 천식이나 알레르기를 유발할 수 있는 곰팡이 종류입니다. 서울의 아토피 아이 52가구를 조사한 연구에서는 31가구에서 벽 속 누수가 발견됐고, 누수가 있는 집의 아이는 중등도 이상 아토피 위험이 유의미하게 높았습니다. 천식이 있는 아이 551명 중 67명은 곰팡이에 감작돼 있었고, 이 아이들은 폐 기능도 낮게 나왔습니다. 어린이집이나 산후조리원에는 곰팡이 농도 기준이 있는데 일반 가정집에는 법적 기준 자체가 없죠.

지금은 샤워 중에도 환풍기를 켜고, 끝나면 스퀴지로 벽면 물기를 밀어냅니다. 귀찮아서 안 했던 일인데, 실내 습도가 60%를 넘으면 곰팡이 농도가 약 2.7배 높아진다는 국립환경과학원 자료를 보고 나서는 손이 저절로 움직이더군요. (출처: 국립환경과학원) 실내 습도를 60% 아래로 유지하는 것이 이 모든 생물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방어선이라는 걸 몸으로 이해하게 됐습니다.

가루진드기 문제는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아나필락시스(anaphylaxis)란 특정 물질에 노출됐을 때 면역계가 과민 반응해 기도가 막히거나 혈압이 급격히 떨어지는 생명을 위협하는 전신 알레르기 반응입니다. 일본에서 이런 환자 36명을 분석했더니 34명이 개봉한 뒤 몇 달간 상온에 둔 가루로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태국 연구진의 실험에서는 밀폐 용기 종류보다 보관 온도가 결정적이어서, 상온보다 냉장 보관이 진드기 번식을 효과적으로 억제했습니다. "밀폐 용기에 넣으면 괜찮겠지"라는 생각이 가장 위험한 오해입니다. 개봉 후에는 무조건 냉장 보관이고, 상온에 몇 달을 둔 가루라면 아깝더라도 버리는 게 맞습니다. 보관 용기보다 보관 환경이 훨씬 더 중요해 보였습니다.

이 두 가지 문제를 겪고 나서 주방과 욕실 관리 방식이 바뀌었습니다. 환기와 제습을 먼저 챙기고, 개봉한 가루류는 바로 냉장고로 넣는 습관을 들였습니다. 작은 생물 하나쯤이야 하고 넘겼버렸던 생각을 버렸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부침가루를 밀폐 용기에 넣어두면 가루진드기 안 생기나요?

A. 안타깝게도 용기 종류는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태국 연구진의 실험에서 봉지, 플라스틱 통, 유리병 모두 상온 보관 시 진드기가 번식했고, 차이를 만든 건 온도였습니다. 개봉한 가루류는 용기에 관계없이 냉장 보관하는 것이 현재로선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Q. 욕실 분홍 물때는 곰팡이 제거제로 닦으면 되나요?

A. 붉은 물때는 곰팡이가 아니라 세라티아 마르세센스 세균 덩어리입니다. 락스(차아염소산나트륨) 희석액으로 닦은 뒤 물기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단, 락스를 사용할 때는 반드시 장갑을 끼고 환기를 충분히 하면서 써야 합니다.

 

Q. 나방파리가 계속 나오는데 어떻게 없애나요?

A. 살충제로 성충을 잡아도 계속 나오는 이유는 유충이 배수구 안 바이오필름에서 자라기 때문입니다. 배수구 거름망의 머리카락과 찌꺼기를 제거하고, 배관 내벽을 솔로 닦은 뒤 뜨거운 물을 흘려보내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입니다. 성충 제거보다 배수구 청소가 먼저입니다.

 

Q. 욕실 검은 곰팡이, 닦아도 자꾸 다시 생기는 이유가 뭔가요?

A. 표면만 닦아도 실리콘이나 줄눈 깊숙이 균사가 남아 있으면 금방 다시 번집니다. 곰팡이 제거제로 닦은 뒤 완전히 건조시키는 것이 핵심이고, 샤워 중 환풍기를 켜고 끝난 뒤 스퀴지로 물기를 밀어내는 습관이 재발을 막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입니다. 줄눈이 너무 깊이 오염됐다면 줄눈 보수를 고려할 필요도 있습니다.

 

여덟 가지 생물을 하나씩 살펴보고 나서 느낀점은 일상에서 습기를 낮추고, 개봉한 가루는 냉장고로. 이 두 가지만 지켜도 위험도 상위 세 가지인 가루진드기, 검은 곰팡이, 세라티아균의 위협을 동시에 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위험도를 5점 척도로 단순화한 접근 방식에는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실제 위험은 노출량과 개인의 건강 상태에 따라 크게 달라집니다. 세라티아균 관련 22.4% 사망률 수치는 중환자가 많은 병원 자료이므로, 건강한 성인이 가정에서 겪는 위험과는 다릅니다. 면역이 약한 가족이 있다면 위험도 낮은 생물들도 더 꼼꼼히 관리하는 것이 좋을것입니다.

환풍기를 샤워 중에 켜고, 냉장고 문 한쪽에 개봉한 가루류 자리를 하나 만들어 두는 것. 이렇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보는게 어떨까요.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9yg3OKLpg6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