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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경색의 80%가 다리에서 시작된다는 말을 저도 한동안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신경과 전문의의 설명을 찾아보고 나서야 그게 꽤 심하게 왜곡된 정보라는 걸 알았습니다. 다리가 저리다는 이유만으로 밤에 이불 속에서 다리를 만져봤던 경험, 저도 있거든요. 정작 봐야 할 곳은 저림이 아니라 걸음이었습니다.
전조증상이라는 말, 사실은 이미 막힌 겁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뇌경색 전조증상 목록을 보면 대개 일곱 가지, 다섯 가지 식으로 나열되어 있습니다. 다리 저림, 자다가 쥐가 나는 것도 그 안에 들어 있죠. 그런데 이 목록은 서로 다른 세 종류의 증상을 한자리에 섞어 놓은 겁니다. 제가 처음 이 사실을 접했을 때 솔직히 꽤 당황스러웠던게 그동안 다리 저림이 생길 때마다 괜히 불안했던 게 기억났거든요.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는데, 뇌경색에서 말하는 전조증상이란 실제로는 일과성 허혈발작(TIA)을 가리킵니다. 일과성 허혈발작이란 뇌혈관이 잠깐 막혔다가 저절로 뚫리는 상태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이미 한 번 막힌 건데 어쩌다 뚫린 것이지, 앞으로 올 일을 몸이 미리 알려준 게 아닙니다.
이 상태에서는 한쪽 팔다리에 갑자기 힘이 빠지거나, 말이 뭉개지거나, 거울을 보면 한쪽 입꼬리가 올라가지 않는 증상이 생깁니다. 그리고 20~30분 뒤에 멀쩡해지죠. 문제는 바로 여기입니다. 증상이 사라졌다는 건 나은 게 아니라 혈관이 잠깐 뚫린 것일 뿐이고, 같은 혈관이 며칠 안에 다시 막힐 확률이 상당히 높습니다. 즉 증상이 없어진 그날이 응급실로 가야 하는 날입니다.
반면 자다가 종아리에 쥐가 나는 것은 근육 경련으로, 60세 이상에서 세 명 중 한 명꼴로 겪을 만큼 흔한 현상입니다. 다리 혈관이 막혀서 오는 통증은 보통 움직일 때 나타나지, 가만히 누워 있을 때 오기는 어렵습니다. 또 뇌경색의 80%가 다리에서 시작된다는 말도 사실과 다릅니다. 동맥경화, 즉 혈관이 굳는 병이 온몸에서 다리 쪽에 먼저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는 의미였는데, 이것이 와전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는 없습니다.
- 갑자기 한쪽 팔다리에 힘이 빠진다 → 즉시 119 신고
- 한쪽 얼굴이 처지거나 말이 뭉개진다 → 즉시 119 신고
- 증상이 20분 만에 사라졌다 → 그날 바로 응급실 방문
- 자다가 종아리에 쥐가 난다 → 뇌경색 신호 아님, 근육 경련
걸을 때 아프다면, 다리가 아닌 온몸 혈관을 보세요
두 번째 갈래는 걸을 때 통증이 오는 경우입니다. 500m쯤 걷다 보면 종아리가 뻐근하게 아파오고, 멈춰 서 있으면 가라앉고, 다시 걸으면 또 아파오는 패턴입니다. 이것은 말초동맥질환(PAD)의 전형적인 증상입니다. 말초동맥질환이란 심장에서 다리로 내려가는 동맥이 좁아지거나 막혀 혈류가 줄어드는 상태를 말합니다. 걸을 때 다리 근육이 혈액을 더 요구하는데, 좁아진 혈관으로는 그만큼 공급이 안 되니 통증이 오는 것이죠.
그런데 이 증상은 척추관 협착증과 구별이 필요한데, 척추관 협착증이란 척수 신경이 지나가는 통로가 좁아지는 병으로, 이것도 걷다가 다리가 아프고 쉬면 낫는 증상을 냅니다. 이 두 가지가 저도 좀 헷갈릴 수 있는데, 구분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멈췄을 때 그냥 서 있어도 가라앉으면 혈관 문제, 앉거나 허리를 앞으로 숙여야 가라앉으면 척추관 협착증 쪽입니다. 마트에서 카트를 밀 때 유독 편하다면 허리를 앞으로 굽히는 자세가 좁아진 신경로를 넓혀주는 것이니, 척추 쪽을 의심해볼 수 있습니다.
눈과 손으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양쪽 다리를 나란히 놓았을 때 한쪽이 창백하거나 푸르스름하게 보이거나, 만졌을 때 한쪽이 눈에 띄게 차갑다면 혈관 문제를 의심해야 합니다. 정강이 털이 언제부터인지 잘 안 난다는 느낌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요한 것은 다리 동맥이 좁아졌다는 게 그 혈관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동맥경화는 전신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출처: 미국심장협회(AHA)에 따르면 말초동맥질환이 있는 환자는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발생 위험이 일반인보다 현저히 높습니다. 다리가 먼저 신호를 보낸 것일 뿐, 심장 혈관과 뇌혈관도 함께 점검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갈래에 해당된다면 혈관외과 또는 순환기내과 방문을 권합니다.
아프지도 않은데 걸음이 달라졌다면, 뇌가 보내는 신호입니다
세 번째 갈래가 제일 섬뜩했습니다. 다리가 저리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은데 걸음이 조금씩 달라지는 경우입니다. 보폭이 줄고, 발을 조금씩만 떼고, 방향을 바꿀 때 발을 잘게 여러 번 딛고, 평평한 바닥에서도 자꾸 발이 걸립니다. 본인은 잘 모릅니다. 몇 년에 걸쳐 조금씩 달라지니까 그냥 나이 탓으로 넘어가기 십상입니다.
이 변화의 원인은 뇌 속 소혈관경색(lacunar infarction)입니다. 소혈관경색이란 뇌 안에 그물처럼 퍼져 있는 아주 가느다란 혈관들이 한꺼번에 크게 막히는 게 아니라 하나둘 조금씩 막히는 상태입니다. 그때그때 뚜렷한 증상이 없어서 본인도 가족도 모르고 지나갑니다. 그런데 이 혈관이 먹여 살리던 뇌 영역이 조금씩 손상되면서 운동 명령 전달 경로가 흐트러지고, 그게 걸음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더 신경 쓰이는 부분은 이 경로가 기억과 판단을 담당하는 영역과 겹친다는 점입니다. 미국 국립노화연구소(NIA)를 포함한 여러 연구에서 걸음 속도 저하와 보폭 감소가 기억력 이상보다 수년 앞서 나타날 수 있다는 결과를 보고하고 있습니다. 소혈관경색이 확인된 분들은 이후 치매 위험이 두 배 이상 높아진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물론 걸음이 느려졌다고 해서 모두 치매로 이어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물론 무릎 통증이나 근감소증, 체력 저하로도 같은 변화가 나타날 수 있으니 걸음 하나만으로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만 아프지 않은데 걸음만 달라지고 있다면, 다리가 아닌 뇌를 확인해야 하는 신호일 수 있으니 꼭 병원에서 검사를 해야합니다.
보통 이 변화는 본인보다 가족이 먼저 알아채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함께 걷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뒤처지게 되고, 신발장을 열어보면 한쪽 앞코만 유독 닳아 있는 것이 눈에 띄기도 합니다. 이게 보인다면 신경과에서 뇌혈관 검사와 함께 인지 기능 검사도 받아보실 것을 권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다리가 저리면 뇌경색 전조증상인가요?
A. 저림 자체는 뇌경색의 직접적인 신호가 아닌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뇌경색 신호로 볼 수 있는 것은 갑자기 한쪽 팔다리에 힘이 빠지거나, 얼굴 한쪽이 처지거나, 말이 뭉개지는 증상입니다. 저림만 있다면 다른 원인을 먼저 확인해보는 것이 맞습니다.
Q. 자다가 종아리에 쥐가 나는 것도 위험한 신호인가요?
A. 뇌경색 신호는 아닙니다. 60세 이상에서 세 명 중 한 명꼴로 겪는 흔한 근육 경련입니다. 다만 경련이 자주 반복된다면 혈압이나 심장 건강을 한 번 점검해볼 계기로 삼는 것이 좋습니다.
Q. 걷다가 다리가 아픈데 허리 문제인지 혈관 문제인지 어떻게 구분하나요?
A. 멈췄을 때 그냥 서 있어도 통증이 가라앉으면 혈관 쪽을 의심합니다. 반면 앉거나 허리를 앞으로 숙여야 통증이 가라앉는다면 척추관 협착증 쪽 가능성이 높습니다. 마트 카트를 밀 때 유독 편하다면 후자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Q. 걸음이 느려지면 꼭 치매가 오는 건가요?
A. 그렇지 않습니다. 무릎 통증, 근감소증, 체력 저하로도 걸음이 느려질 수 있습니다. 다만 아프지도 않은데 걸음만 달라지고 있다면, 뇌 소혈관 상태를 확인해보는 것이 좋다는 의미입니다. 걸음 하나로 치매 여부를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Q. 뇌경색 증상이 잠깐 생겼다 사라졌는데 그냥 있어도 될까요?
A. 절대 그냥 계시면 안 됩니다. 증상이 사라진 것은 혈관이 잠깐 뚫린 것이지 나은 게 아닙니다. 같은 혈관이 며칠 안에 다시 막힐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에, 증상이 없어진 그날 바로 응급실을 방문해야 합니다.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뇌혈관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정보가 많아질수록 서로 다른 이야기가 뒤섞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제가 이번에 정리하면서 느낀 건, 결국 핵심은 단순한데, 갑자기 왔냐 서서히 왔냐, 아프냐 안 아프냐, 이 두 가지 질문으로 세 갈래가 갈립니다.
저도 아직 특별한 증상은 없지만, 피곤함이 오래가는 날이면 예전보다 보폭이 줄진 않았는지 문득 돌아보게 됩니다. 부모님 뒤에서 열 걸음 지켜보는 것, 신발장 앞코가 한쪽만 닳진 않았는지 확인하는 것, 거창한 건강 검진 전에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관찰입니다. 결국 건강은 누가 대신 지켜주는 게 아니라 매일 조금씩 쌓아가는 습관이라는 걸, 이번에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